해오 김동조 사이버기념관

오늘과 같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1960-70년대의 고속 경제성장과 국력신장에 기인하며, 그 초석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밑거름이 된 ‘한일회담의 성사’였고, 그 토대는 끈질긴 ‘자주국방 외교’의 비장한 전리품이었다.

그 역사적 시점에 패권열강들의 냉엄한 견제를 뚫고 ‘국익(National Interest)’을 실현해낸 냉전시대 실리외교의 선구이자, 건국기 한국외교의 기틀을 세운 직업외교관 해오 김동조.

광복 초기부터 관계에 진출한 해오는 1951년 6월 외무부 정무국장으로 출발해 1978년 6월 대통령외교담당특보 직을 사임할 때까지, 외무차관, 초대주일대사, 주미대사, 외무장관 등을 역임하며 27년간 대한민국 외교에 헌신했다.

외무부 정무국장과 차관 시절,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 전문인력 수급, 행정양식 현대화, 여권업무 정비, 출입국관리업무 이관 등 건국초기 외교행정의 기반을 다진 일련의 조치는 해오의 행정 역량을 적시하는 대목이다.

외교 일선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해오는, 1951년 선박반환교섭팀의 일원으로 한일회담에 참여한 이래, 한일회담수석대표로서 1965년 한일간 기본조약 및 제반협정에 조인할 때까지, 실리에 기초한 특유의 협상력으로 실무 수반다운 탁월한 외교 역량을 한일 양국에 각인시켰다.

1968년의 1·21사태와 푸에블로호납치사건, 국군현대화계획, 한미안보협의회의 창설, 1971년 미7사단 철수, 1964-73년 월남파병 등 3공화국 당시의 주요 국가현안들에 직면해서도 국익, 곧 실리를 우선하는 ‘해오외교’의 기조를 잃지 않았다.

‘국익’은 18-19세기 고전외교의 핵심개념이다. 1차대전 이후 ‘다국간 협정에 기초한 공개외교’가 신외교로 주창되었지만, 2차대전 후 미·소 냉전의 극한대립 하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주권국가간 분쟁처리 기술’로서의 고전적 외교는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 다시 복권되었다. 평생을 외교 일선에 바친 해오의 재임기간은 ‘냉전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명분보다 국익을 우선한 해오의 실리외교는 분단한국의 현실과 시대적 소명에 부응한, 시의적절한 실무노선이었던 것이다.

냉전 이후, 통신·교통 수단의 급격한 발달과 상호의존성의 증대로 다기한 외교적 국면이 전개되고 있지만, 패권주의와 주권국가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한 국익에 기초한 실리외교의 지평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도 열강들간 ‘힘의 균형’에 국가의 존망을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해오외교의 유용성은 희석될 수 없다. 해오의 말대로 “외교가 단순히 국제신의나 규범에 고착되지 않고 그 나라의 국익수호를 위한 정치노선과 직결되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